2015년도에 세무사 자격증을 땄으니 차수로는 6년차이고 세무사로서 삶을 영위한지는 5년이 다 되었다. 세무사를 준비한 건 로스쿨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같이 하숙을 하는 형이 세무사를 준비한다고 해서 준비하게 된 거였다. 그 형의 '로스쿨은 계륵이야, 세무사 그거 2년이면 돼'라는 말은 삼시 세끼 밥을 주는 22만원 짜리 1평 짜리 하숙집에서 생활하던 나로서는, 그런 가정 형편의 나로서는 떨치기 힘든 악마의 유혹이었다. 법조인으로서의 꿈을 가졌던 필자였지만 로스쿨 공부 자체가, 3년간 공부만을 할 수 있는 생활 여건을 마련한다는 그 자체가 심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일주일 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리트(LEET) 스터디도 나가기 싫었다. 그래, 26살에 세무사를 준비하기로 마음 먹었다.
세무사를 공부한 기간은 꼬박 3년이 걸렸지만 실질적으로 공부한 기간은 1년 반 정도나 될까? 필자의 공부 과정기를 읽은 독자면 아시겠지만 필자는 세무사 공부하면서 알바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랬다. 실제로 직장을 다니면서 세무사를 합격하신 분들도 꽤 많고 알바 하면서 합격하셨다는 분들도 주위에서 정말 많이 봤다. 회계사가 그럴 수 있는 시험인가? 과연 로스쿨이 그럴 수 있는 학사과정이며 변호사시험이 그렇게도 만만한가? 세무사 시험 자체는 결코 만만한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세무사는 공부 자체가 세법을 중심으로 얼개가 짜여있고 회계학만 어느 정도하면 붙을 수 있는 시험으로 공부 자체를 매우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험이다.
필자는 불면증으로 조금 고생했던 것을 제외하면 공부 자체는 제법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유예를 평균 1점 차로 아쉽게 떨어지고(이 때 붙었으면 정말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을 것 같긴 하다..) 3차 때 겸손함을 배우면서 조금 똥(?)줄이 타긴 했지만 무리 안하고(3차 때는 알바 병행 안하고..) 나름 웰빙으로 수험생활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로스쿨 준비하다가 세법도 법 아니야?하고 준비했던 게 세무사였기에 회계사는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 학교에서 세무사 스터디를 할 때도 나이 많은 선배가 너는 나이도 어린데 왜 회계사 준비 안하냐 라고 했을 때 별 준비된 답변은 없었다.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까 세법도 법이니까 세무사를 준비하게 된 거였고 한편 적은 노력으로 빨리 합격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현실을 알게된 건 세무사 합격 이후였다. 아무런 세상 물정 모르고 나는 나름 스카이 출신에 세무사까지 땄는데 이제 인생 그냥 살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치열함은 없었다. 수습세무사와 근무세무사를 하면서 어쩌면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 내가 대기업에 안 있고 개업을 했었을 수도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가끔은 해본다. 하지만 사람이란 건 성숙이란 게 필요한거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소위 고학벌 세무사였고 고학벌 회계사였으면 그나마 평균적인 테크트리를 탔었을 터인데 고학벌 세무사였기에 개업은 개업대로 못하고 커리어는 미친듯이 망가졌다.(재정 수준 또한 물론 처참했다.) 내가 티스토리에 진로편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내가 프로이직러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다.
어쨌든 나는 개업 안한 어쩌면 못한 세무사다. 학벌도 살리지 못하고 자격증의 가치도 살리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대기업에 겨우 겨우 경력직으로 들어와 또 미친듯이 1년을 보냈다. 이번 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일했다. 새벽 3시까지, 5시까지 정말 이를 악물었다. 정말 정말 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공기업 다니던 당시엔 사실 비트코인 투자로 빚까지 졌었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주택, 1분양권, 주식 조금.. 이게 다 대출의 힘이겠지만.. 순자산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래봐야 많은 건 아니지만.. 필자가 비트코인으로 빚을 졌을 때 필자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 지금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투자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필자의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를 점검하게 되었다. 세상을 만만하게 봤고 필자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노력하지 않았다. 욕심만 많았다. 공기업을 다니면서도 미친듯이 투잡, 쓰리잡, 포잡하면서 빚도 1년만에 갚고 투자 공부에 전념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세무사를 따고 아무것도 모르고 개업 테크트리로 갔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돌아 보았다. 회계사는 세무사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평균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세무사는 회계사보다 노력이 덜 들어간다. 개업을 통해서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고 이직을 위해서도 회계사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자는 개업 못한 세무사다. 개업은 정말 준비된 사람만이 해야 한다. 그리고 세무사 자격증을 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업의 씨앗을 마음에 품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인드셋을 정비해라. 미친듯이 열심히 사업을 위해 매진할 생각이 있는가? 본인이 현재 수습이던 근무세무사던 사내세무사던 간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최소한의 책임감은 갖고 일에 임하고 있는가? 개업하면 여유있게 살 수 있는 건 맞겠지만 애초에 그것이 목표인 사람은 절대 개업을 하면 안될 것이다. 어떻게 따지면 그런 마인드의 세무사들은 개업하지 않은 것이 실패하지 않은 세무사일 것이다. 또한 개업 테크트리(수습 및 근세)를 타지 않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의사결정일 것이다.
개업 안한(못한?) 세무사는 실패자인가? 그건 그 사람의 마인드셋에 달렸다. 마인드셋이 안된 사람은 개업 못한 게 오히려 축복이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는 것이고 마인드셋이 된 사람은 개업을 현재 안하고 있는 것이 본인에게 손해다. 자신의 실력(실무지식이든 인간관계 스킬이든)을 키우는 것만이 본질이다. 그리고 마음을 예리한 칼날같이 집중해야지 단시간 내에 사업을 궤도로 올려 모두가 지향하는 개업 세무사의 라이프를 누릴 수 있다.(애초에 그런 세무사님들은 궤도에 올라가도 열심히 사신다.) 노력하지 않은 세무사에게 여유 있는 라이프는 금방 보장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대기업 직장인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게 되니 차라리 취직을 해라. 그러나 열심히 할 각오가 있다면 또한 본인에게 그러한 실력이 있다면 당장 개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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